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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子의 '無爲'와 예수의 '내어맡김' 비교 연구 : 마르코복음 14장 36절의 '아버지의 뜻대로' 를 중심으로

임내규 (성공회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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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道는 '無爲自然'의 사상에 있다. 도의 작용이 무위를 근거로 한다면, 도의 현상은 자연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니, 무위와 자연은 도의 상이한 표현일 뿐이다. '하는 것이 없다'는 것은 그저 놀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 그러한 까닭'을 말하는 것이며, 스스로 말미암는 것을 뜻한다. 다만 하는 일이 없어 보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도와 하느님은 유사하다고 하겠다. 하는 일이 없어 보이지만 하지 않는 일이 없으니, 하느님이 눈에 보이지 않으나 삼라만상의 변화무상한 우주를 섭리하시는 것과 같다. 무위라는 말은 '행위가 없음'이...
노자의 道는 '無爲自然'의 사상에 있다. 도의 작용이 무위를 근거로 한다면, 도의 현상은 자연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니, 무위와 자연은 도의 상이한 표현일 뿐이다. '하는 것이 없다'는 것은 그저 놀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 그러한 까닭'을 말하는 것이며, 스스로 말미암는 것을 뜻한다. 다만 하는 일이 없어 보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도와 하느님은 유사하다고 하겠다. 하는 일이 없어 보이지만 하지 않는 일이 없으니, 하느님이 눈에 보이지 않으나 삼라만상의 변화무상한 우주를 섭리하시는 것과 같다. 무위라는 말은 '행위가 없음'이 아님은 이제 충분히 말하였다. '인위적 행위'가 그릇된 결과를 가져오고, 인위적 행위가 하느님의 뜻에 절대 맞지 않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예수에게서 인위적 행위를 볼 수 없음은 스스로 행하여도 벗어남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노자의 무위자연의 행위와 맥을 같이 함이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6:38-39)." 또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요7:16-17)." 위의 본문처럼 예수는 자신의 일과 하느님의 일을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분명히 자신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에는 불의나 사사로운 욕망이 개재될 수 없고 오직 정의와 진리와 자유가 강물처럼 흐를 뿐이다. 그러나 한가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그것은 예수의 행동이 전적으로 없었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는 누구보다도 치열한 자가 삶을 살다가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아니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만큼 많은 행동을 하셨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남에 대한 질타와 항거였고, 하느님의 법을 바로 세우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예수는 불의한 자들을 결코 묵인하지 않았다. 그들을 묵인하는 것은 평화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고 명백히 밝히고 있다. "너희는 박하와 운향과 온갖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정의를 행하지 않고 있다. 너희는 반드시 이것을 행하라."(루가11:42)고 말하면서 그들에게 현재적인 책임을 요구한다. 지금까지 다루었던 예수의 '내어맡김'과 '자기비움'은 결코 그릇됨을 보고 잠잠하는 비능동적 행위가 아니다. 그릇됨을 보고 잘못했다고 항의하고, 대항하라는 것이다. 그것만이 참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다. 행위를 하되 하느님의 뜻을 담고, 뜻에 합당하게 행동하는 것, 동양의 최고의 실천적 삶인 無爲的 삶의 전형을 예수에게서 발견할 수 있음은 진리의 모습이 닮은꼴에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닮은꼴이 있음은 다른 점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양적 우주관인 무위자연 사상과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느님 섭리와의 만남은 인식론을 극복해 보고자 하는 노력이지 일치함을 설명해 내고자 하는 작업이 아님은 주지의 사실이다. 앞으로 동양과 서양의 사상적 만남은 지속적으로 이루어 질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만남을 상생과 화합을 이루는 도구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 안에서 반드시 일치를 이루어야 할 이유는 없다. 서로를 인정하며 함께 존재의 의미를 찾는 것이 이시대의 신학이고, 영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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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 3
1. 문제제기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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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 3
1. 문제제기 = 3
2. 연구방법 = 4
Ⅱ. '無爲'에 대한 사상적 고찰 = 7
1. '無爲'의 개념 = 7
1) 노자의 시대적 배경 = 7
2) '無爲'의 개념 = 8
2. '有爲'와 대칭되는 '無爲' = 10
3. '多夕 유영모'의 무위 이해 = 13
1) 다석 유영모의 종교심 = 13
2) 다석 유영모의 무위 이해 = 16
4. 无爲堂 장일순의 무위 이해 = 18
1) 무위당 장일순의 종교심 = 19
2) 무위당 장일순의 무위 이해 = 20
Ⅲ. 성서속에 나타난 예수의 '내어맡김' = 24
1. 마르코복음 14장 36절에 나타난 '예수의 고백' 고찰 = 24
2.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행위로서 '내어맡김' = 29
1) 하느님의 뜻으로서의 고난 = 29
2)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에 하느님의 나라가 = 30
3) 예수의 삶에서 보여주는 순종과 내어맡김 = 32
4) 하느님의 뜻을 위해 불의와 맞서는 내어맞김 = 35
3. '내어맡김'의 유사어로서의 '지기비움'(Kenosis) = 38
1) 비움을 뜻하는 성서 희랍어 케노시스의 일반적 의미 = 38
2) 그리스도의 케노시스 = 40
3) 하느님의 케노시스 = 42
4) 최근의 케노시스 신학과 동양사상과의 접목 = 43
Ⅳ. '내어맡김'의 영성을 요구하시는 하느님 = 47
1. 하나가 되는 영성 = 47
2. 티끌과 화합하는 영성 = 48
3. 욕심 없이 일하는 영성 = 49
4. 참 평화에 이르는 영성 = 50
Ⅴ. 결론 = 52
참고자료 =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