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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원폭피해자의 사회적 고통, 그 구성과 대물림 : 원폭2세환우 가족을 중심으로

Social Suffering of Korean Atomic Bomb Survivors, Its Construction and Transmission

박성실 (성공회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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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 Atomic-bombs named 'Little Boy and 'Fat Man' were dropped in Japan (Hiroshima and Nagasaki) by the U.S. Boeing B-29 Super Fortress on 6th and 9th of August, 1945. The number of total casualties has been estimated approximately 700,000 and of which 10% were Korean. Most of them had migrated for t...
Two Atomic-bombs named 'Little Boy and 'Fat Man' were dropped in Japan (Hiroshima and Nagasaki) by the U.S. Boeing B-29 Super Fortress on 6th and 9th of August, 1945. The number of total casualties has been estimated approximately 700,000 and of which 10% were Korean. Most of them had migrated for their living or had been sent as forced labour under the Japanese Occupation. After surrender of Japan, 2,300 Korean survivors urgently came back to South Korea. But their suffering did not come to an end. Surprisingly this issue is not known in Korean society and Korean government has remained silent of their precarious condition and the ensuing sufferings, though Korean survivors were significant portion of the total number. This is the starting point of this study. What made it possible to ignore them in society and left out in sufferings are questions to be answered. Since then, Korean survivors are living in agony. They had to struggle for the compensation from Japan unlike Japanese survivors. Although first generation of survivors has been gradually included in the protection of the Relief Law of Japan by several lawsuits since 1978, offspring and spouse have been excluded from it. Not only Japanese government but Korean and U.S. governments officially denied the consequent genetic effects of radiation exposure. As a result of this, the governments do not need to take any responsibilities for offspring of survivors. In reality, according to the Research done on the Actual Condition by Korean National Human Right Committee in 2004, high prevalence rate among second generation of survivors was reported. Therefore, this study explores how their suffering has been socially constructed and how the devastated lives of survivors have been transmitted to next generation in the Korean and East Asian context. Korean survivors have been suffered in a wide range of physical symptoms and concurrently lingering 'Historical Trauma'. 'Historical Trauma' has been articulated and entangled with four historical horrendous incidents respectively - Japanese Occupation, Colonial Migration, A-bombing, division of Korea. Korean survivors stand for nuclear risk and unfinished liquidation of the past with Japan. The Park Chung Hee dictatorship justified his authority with economic development plan in the name of nationalism. In the meantime, Korean government planned to construct a nuclear power plant in Korea and the number of nuclear weapon in the world was surging by the arms race between US and USSR. In this aspect, Korean government deliberately neglected this issue and their needs. It transpired that president Park Chung Hee and ruling party wanted to take the claimed fund from Japan in the name of national interest during the process of Korean-Japan Treaty in 1965 and Korean-Japan talk regarding compensation for Korean survivors. Korean survivors were situated in the position of 'pro-Japanese collaborator', 'abnormal family', 'non-nation' in Korean society. They have never got a chance to mourn over their loss. Their desires for security and justice were continually ignored leading to frustration. They have not had the power to speak out and the languages to appeal concerning their difficulties. There is a big gap between survivors’ own experienced memory and Korean collective memory regarding A-bombing. It is because of this reason the violation and painful life they have been dragging on has hardly got the way to register in Korean society. Moreover, survivors have suffered discrimination in marriage and employment due to their ailing social condition including heredity. Discrimination against survivors was constructed socially on the basis of experience and discourse but not from medical perspective. It means that survivors and their family both are placed in that situation. Family is the agency to carry survivor's pain and to attain the normality socially formed. In that sense, many Korean Survivors do not want to be identified as A-bomb survivor because of the discrimination and trauma attached to that identity. It frequently causes discrimination outside family and creates strained relations within the family. Likewise, the suffering of the Korean A-bomb survivor has been constantly reconstructed in present Korean society. Keyword: Korean Atomic Bomb Survivor, Atomic Bombing, Social Suffering, Social Transmission, Historical Trau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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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6일과 9일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는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총 사상자는 약 70만 명에 달했고, 그 중 10%인 약 7만 명이 조선인이었다. 일본이 항복하자 이들 중 2,3000여명이 한국으로 귀환했다. 이들 대부분은 식민시기 일제의 착취와 강제동원으로 일본으로 이주한 사람들이었다. 한국원폭피해자들은 그 수가 적지 않지만 그 존재는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알려져 있지 않았다. 1945년 이후 탈식민의 부재와 동아시아의 냉전구도 속에서 한국사회는 과거청산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했고, ‘핵의 평화적 사용’ 여론과 ...
1945년 8월 6일과 9일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는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총 사상자는 약 70만 명에 달했고, 그 중 10%인 약 7만 명이 조선인이었다. 일본이 항복하자 이들 중 2,3000여명이 한국으로 귀환했다. 이들 대부분은 식민시기 일제의 착취와 강제동원으로 일본으로 이주한 사람들이었다. 한국원폭피해자들은 그 수가 적지 않지만 그 존재는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알려져 있지 않았다. 1945년 이후 탈식민의 부재와 동아시아의 냉전구도 속에서 한국사회는 과거청산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했고, ‘핵의 평화적 사용’ 여론과 ‘식민지 조기 해방론’ 등을 양산했다. 한국원폭피해자들은 핵의 위험성을 몸으로 시현하고 있으며, 과거청산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삶으로 증명하고 있다. 이에 한국 정부는 그 존재를 방기했으며, 한국 사회는 이들을 어쩔 수 없는 역사적 피해자로 치부하고 침묵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원폭피해자들이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거나 사회적으로 공감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결국 생존자들은 ‘친일파’에서부터 ‘비국민’, ‘비정상가족’으로 사회적으로 위치 지어졌고, 사회적으로 배제되었다. 이렇듯 한국원폭피해자들은 식민, 이주, 원폭, 분단이라는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만나며 역사적 트라우마를 겪어 왔고, 그 고통은 한국 사회 내에서 동아시아의 냉전과 한반도의 분단, 국민국가 형성이라는 국면과 만나며 심화되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몸의 고통이 피폭자였던 1세 뿐 아니라 일부 2세에게까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과 미국 정부는 ‘유전성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말로 피폭의 유전성을 부인하고 있으며, 한국 정부는 책임 주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한 발 물러서고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피폭의 유전성은 의학적으로 형성된 것만은 아니었다. 이는 생존자들의 경험과 담론을 통해 사회적으로 형성된 것이었다. 따라서 유전성 문제는 의학적 접근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접근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측면에서 접근했을 때 한국원폭피해자들의 고통은 집단기억과 아비투스를 통해 가족을 매개로 일상에서 전승된다. 전승된 고통은 2세환우 가족에게 사회적 박탈감, 낙인으로 인한 두려움과 분노, 체념 등을 안겨주었다. 또한 많은 경우 사회적 배제를 우려한 이들 가족은 2세환우의 존재를 은폐하고자 했다. 따라서 한국원폭2세환우들은 가족 안에서 조차 고립되었고, 사회적 발화가 더욱 어려워졌다. 따라서 생존자 가족은 상실의 아픔과 상처를 애도하지 못했고, 트라우마를 겪으며 발생한 안전과 정의에 대한 욕구는 철저하게 좌절되었다. 게다가 이들의 고통은 언어화되지 못했다. 이들은 그 고통을 설명할 언어를 가지지 못했으며, 한국의 집단기억의 언어로는 그 고통을 설명할 수 없었다. 이에 한국원폭피해자들의 고통은 한국의 집단기억과 생존자의 개인기억, 그 간극 어디에 표류한다. 이와 같이 한국원폭피해자 문제는 단순히 ‘원폭’이라는 사건에 박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식민, 이주, 분단, 근대국가형성이라는 역사적 과정을 통해 동태적으로 구성된 것으로, 한국 정부와 사회는 그 책임을 면피할 수 없다. 이는 과거의 문제일 뿐 아니라 현재의 문제이며 미래의 문제다. 한국 원폭2세 환우 가족의 고통은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목차 moremore
Ⅰ. 서론
1. 연구 문제 및 의의 1
2. 연구 대상 및 범위 4
...
Ⅰ. 서론
1. 연구 문제 및 의의 1
2. 연구 대상 및 범위 4
3. 선행연구 검토 8

Ⅱ. ‘사회적 고통’의 이론적 접근과 연구 방법
1. 이론적 접근
1) 고통을 바라보는 이론적 접근, 역사적 트라우마 16
2) 고통의 매개 단위, 가족 22
3)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 ‘사회적 고통’ 24
2. 연구방법
1) 구술증언 및 구술생애사 27
2) 면담 및 구술자 30

Ⅲ. 고통의 구성

1. 고통의 발생: 역사적 트라우마를 중심으로
1) 식민: 착취 34
2) 이주: 차별 45
3) 원폭: 상실 53
2. 고통의 전개: 근대국가 형성과 피해자들의 사회적 위치를 중심으로
1) 탈식민: 경계 68
2) 분단: 속박 76
3) 사회적 위치 91

Ⅳ. 대물림되는 고통, 고통의 현재성
1. 대물림되는 고통: 낙인
1) 꿈 꿀 수 없는 미래 103
2) 말할 수밖에 없지만 말할 수 없는 딜레마 113
2. 고통의 현재성: 언어의 부재와 트라우마 122

Ⅴ. 결론 130

Ⅵ. 참고문헌 137

Abstract 145